빚보다 깊은 구조, 다시 설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 newsg1g1
-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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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의 부채 탕감 정책은 단순한 정치적 제스처가 아닌, 팬데믹으로 심화된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읽힌다.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국가가 취한 ‘대출 중심’ 지원책은 많은 자영업자들에게 버팀목이 되었지만, 동시에 되돌릴 수 없는 빚의 고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금, 이 빚을 단지 숫자로 볼 것인지, 사람들의 삶의 무게로 볼 것인지에 따라 정책의 방향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는 캠코를 중심으로 배드뱅크 설립, 새출발기금 확대, 상환유예제 등 다양한 방식의 금융지원 장치를 준비하고 있다. 이는 단지 채무의 일부를 감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빚에 짓눌린 채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다. 특히 다중채무 상태이면서도 저소득·저신용의 자영업자들이 대상인 만큼, 이는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는 회복과 회생의 전략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중요한 지점이 있다. 채무 탕감은 ‘결과에 대한 응급처치’이지, ‘문제를 낳은 구조 자체에 대한 치료’는 아니라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왜 과도한 대출에 의존해야만 했는지, 왜 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쪽이 늘 영세 자영업자인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자영업자 과잉 문제는 지속적으로 지적되어왔다. 제한된 시장에서 너무 많은 이들이 생계를 걸고 경쟁하다 보니, 소득의 불안정성과 경영의 취약성이 만성적인 문제가 되어왔다. 여기에 코로나라는 외부 충격이 닥치자,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이들이 바로 자영업자와 저소득층이었다. 정부의 통제 아래 일할 수 없게 되었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그들의 부채로 남았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탕감’이 아니라, 이들이 다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다. 교육과 컨설팅, 사업 재편을 위한 지원, 그리고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빚을 없애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시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현재의 정책도 또 하나의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책임지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태도다. 정부 정책이 제한을 걸어 생긴 손실이라면, 그것을 국가가 보상하는 건 권리이지 시혜가 아니다. 채무 탕감을 둘러싼 낙인을 걷어내고,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실패 후에도 다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이제는 빚의 문제를 개인의 무능이나 도덕성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시스템의 설계 오류이자 구조적 불평등의 결과로 봐야 할 때다. 탕감은 그 첫 단추일 뿐, 진짜 과제는 그 다음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지 채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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