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방향은 맞지만 속도가 문제다
- newsg1g1
- 7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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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 논의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을 개선하고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전환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기대는 크지만, 논의의 현실은 기대에 못 미친다. 제도 도입의 취지는 분명하지만, 세부 설계에 있어 각 이해관계자들의 시각차와 구조적 문제들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현행 계약형 퇴직연금은 사업장별로 퇴직연금 운용이 이뤄지며, 대부분이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치중되어 있다. 이는 운용 주체가 안정성에 치우친 결과로, 실질 수익률 제고라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수익률이 낮으면 근로자의 노후 소득 보장 기능도 약화된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것이 바로 기금형 제도다. 독립된 기금이 자산을 통합 운용하며, 수익률 제고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도의 방향성이 아무리 타당해도 실행까지 이어지려면 설계 단계에서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현재 논의의 가장 큰 걸림돌은 책임 소재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손실 발생 시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지, 정부가 개입해 보전할 수 있을지, 가입자 보호 장치는 어떻게 마련할지 등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다. 기금형 제도가 국민연금처럼 공적 기금의 성격을 띠게 된다면, ‘운용 실패에 따른 세금 투입’을 두고 사회적 논란이 불가피하다.
또한,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 역시 중요한 과제다. 외부 민간 전문가에게 운용을 맡길 경우 정부의 영향력 배제와 투명한 지배구조가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 고려가 반영된 운용으로 이어져 기금의 본래 목적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실제로 해외 주요국에서도 기금형 제도를 도입하면서 이러한 투명성과 책임성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오랜 시간 지속됐다.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은 단순히 수익률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적 해법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국민의 노후를 위한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만드는 일이다. 따라서 제도의 신뢰성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논의가 지연되고, 책임 회피성 입장만 반복된다면 제도 도입 자체에 대한 회의감만 키우게 된다.
결국 중요한 건 방향보다 속도다. 국민연금이라는 공적 시스템의 경험을 참고하되, 기금형 퇴직연금만의 독립성과 유연성을 어떻게 조화롭게 설계할지가 관건이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중립적인 조정자 역할을 확고히 해야 하고, 이해관계자들은 보다 실질적인 해결책 마련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정책적 의지가 꺾이지 않고 이어진다면, 기금형 퇴직연금은 노후 보장 체계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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